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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데올로기: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

 

이원규(감신대 은퇴교수, 종교사회학)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란 문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즉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정치체제 혹은 정치적 이념을 말한다. 이것은 군주제나 독재체제에 대한 반대 개념이다. 그 어원은 희랍어 ‘demo'(국민)’kratos'(지배)라는 두 말이 합쳐진 ‘demokratia'에서 유래했는데, 그 말이 처음 사용된 초기 그리스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이 다수결 원칙으로 정치적 결정에 직접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했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자유와 평등사상에 기초한 정치 이념으로 자리매김 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부터이지만(그러나 이 시대에서는 여전히 성적인, 인종적인, 계급적인 불평등이 존재했고, 자유는 제한적이었다), 진정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국가와 사회에 정착하게 된 것은 20세기 서구 국가들에서였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약 절반 정도이지만, 온전한 의미에서의 참된 민주국가는 서구의 10여 개국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몇 가지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로, 법률의 제정과 정치적 결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모든 국민이 투표로 직접 참여하는 것을 직접 민주주의, 선출된 대표가 이에 참여하는 것을 대의 민주주의라고 한다. 둘째로, 국민의 권리 행사는 평등에 근거해야 하는데, 이때 평등이란 정치적 평등(투표권, 피선거권), 법 앞의 평등, 기회의 평등, 경제적 평등(지나친 소득격차 지양), 사회적 평등(계급차별 금지)을 말한다. 셋째는 자유로서, 여기에는 언론의 자유, 출판과 표현의 지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거주와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넷째는 대의제도로 대의민주주의를 말한다. 다섯째는 다수결 원칙에 의한 선거제도이다.

어느 분야를 강조하는가에 따라 민주주의는 여러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정치적 권한이 국민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것을 정치 민주주의,’ 경제적 평등에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을 경제 민주주의,’ 민주적 방식으로 생산수단을 공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을 사회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의미 때문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자유가 없는 정치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에서의 구 소련과 동구권에서는 이것을 인민 민주주의라고 불렀지만, 그 체제는 공산당 1당 독재(민주주의는 다당제가 기본이다)에 근거하여 모든 자유가 제한되고 직접 혹은 대의 정치가 용납되지 않았기에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심지어는 북한조차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쓰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나라가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모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것은 경제체제이다. 민주주의는 사유재산 제도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인정하는 자본주의 성향을 옹호할 수도 있고, 국가나 정부가 재산과 소유를 국유화하여 재분배하는 사회주의 성향을 선호할 수도 있다. 이때 그 절차나 과정이 민주적일 경우 전자는 자유민주주의,’ 후자는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의 가치를, 사회민주주의는 평등의 가치를 우선적 과제로 삼는다.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하되 민주적인 절차나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와는 다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가 성숙된 서구사회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종교나 직업이나 경제활동에서 자유로운 선택과 활동을 추구하면서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권한과 부의 불균형으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초래되었다. 이에 대한 대안이 복지제도의 활성화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서구사회에서 일찍이 사회복지제도가 발달한 것은 자유민주체제가 보장한 시민의 자유선거권 행사로 얻어진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불만을 해소하려고 그 제도가 정책적으로 도입된 측면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 특히 자유와 관계된 가치를 존중하고, 시장경제 원리에서 비롯된 자유경쟁을 정치제도에서 다시 살려냄으로 국가적인 경제적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은 대개 선진국이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이다. 이렇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사회복지제도를 도입하여 자유경쟁을 규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자유로운 경제생활과 정당활동을 통하여 인간의 자유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는 기독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혹자는 민주주의가 정치적 용어가 되기 오래 전부터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대의 서구 민주주의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 그리고 프랑스와 미국의 혁명은 세속적인 요인들에 주로 기인한 것이었고, 교회는 오히려 그러한 민주주의 발달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권위주의 정치형태를 선호했고 군주정치를 옹호해 왔는데, 이것은 그러한 태도가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고 정교회와 개신교조차도 비민주적인 권위주의 정부를 지지했고,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키려는 세력을 반대했다. 모든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신이 그 권한을 부여한 왕권 혹은 지배계급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것은 왜 오늘날에도 많은 교회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독재정권들의 강력한 후원자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 또한 그것은 왜 자유주의 계몽사상에 익숙한 유럽사회가 18세기 이후 반교회적 성향을 드러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도 된다.

그러면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 사상이나 체제는 무관한 것인가? 우리는 기독교와 교회를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제도화된 교회는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체로 비민주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본질이나 사상 자체가 비민주적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대로 기독교의 기본 정신은 자유, 평등, 정의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 가치들은 나중에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가 되었다. 이것은 왜 자유민주주의가 주로 서구 기독교 국가들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실제로 민주화 지표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다수인 나라들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비록 교회 자체는 민주주의 정신을 따르지 못했다 해도 오랜 기간 유럽의 국가와 사회에 미친 민주주의적인 기독교 가치는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서 사회복지 개념도 다분히 기독교적 가치에 힘입었다 하겠다. 복지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들 역시 기독교 정신이 구현된 유럽사회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가장 지킬 만한 체제요 이념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제도화된 교회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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