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기독교와 이데올로기: 기독교와 자본주의

 

이형규 (숭실대 초빙교수, 사회윤리학)

 

미국에서 부동산 광고를 보다보면 빅토리아풍(Victorian style) 집이라는 문구를 자주 보게 된다. 영미권의 사람들에게 빅토리아 시대는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황금기로 기억된다. 19세기말 영국 빅토리아 시대는 산업혁명과 전세계 1/4 영토와 인구를 가진 대영제국(British Empire) 최절정기였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근대 자본주의는 균열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은 이 시대를 잘 묘사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기독교적 기념일로만 여겨졌던 성탄절이 모든 이들이 축하하는 세계 최대의 명절이 되는 계기로 발전시킨 작품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는 인류 보편의 관용과 자비의 거룩한 시즌이 되었다. 그 작품에 나오는 스크루지는 중세 귀족계급을 대신하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부르주아계급(bourgeoisie, 신흥 중상층이 된 자본가계급)을 대변한다. 디킨스는 이 계급을 쥐어짜고 비틀고 움켜쥐고 긁어내고 탐욕스러운 늙은 스크루지로 묘사하였고 이들이 바로 당대 영국 자본주의 이념의 담지자(擔持者), 즉 핵심계층으로 지적한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맬더스의 <인구론>은 그들의 바이블이 되었기에 그들은 자본주의로 인해 쌓인 부를 하층계급에 나눌 의지도 없었고, 자선은 자연과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악으로까지 보았다. 왜 그런가? 당시 영국의 사회철학자들은 독특한 우주론을 상정하고 있었다. 신은 시계를 만든 시계공처럼 이세상이 시계처럼 스스로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만드셨고 자연과 인간사회도 신이 주신 자연법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작동하기에 외부의 간섭은 자연적 발전을 가로 막는다는 것이라 믿었다. 물리학에서는 아이작 뉴튼, 경제학에서는 아담 스미스, 사회철학에서는 맬더스가 그 이념들을 제공하여 주었다. 이제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하여 아무리 잘못된 사회현실을 보아도 통제와 간섭은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그것에 마음의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사라졌다.

막스 베버는 이제는 고전이 된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소논문에서 일찍이 전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적 집단의 출현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청교도적 부르주아들이다. 이 집단은 근대 서구사회에서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베버가 실제 모델로 삼은 집단은 영국신흥 부르주아 계급인 신사들(British gentleman)이었다. 청교도(the Puritans)는 개신교의 하나의 종파였지만 그들의 사회적 행위는 개신교적 대표성을 띠게 되었다. 그들은 칼빈의 스위스 제네바, 크롬웰의 영국,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적 이상국가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수도원에서 나와 세속사회에서 종교적 사제와 같은 삶을 사는 세속의 성자라 생각하였다. 베버가 예로든 한푼을 아끼는 것이 한푼을 버는것이라고 믿고 산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과 하나님의 창조섭리에서 나의 여정과 가난한자들의 길은 틀리다고 믿고 구두쇠로 산 디킨스의 가공의 인물 스크루지는 같은 청교도적 중상층들인 것이다. 자신의 구원에만 집중한 청교도들은 삶의 쾌락을 즐기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고 재화의 축적만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는 이웃의 빈곤을 조롱하며 자신의 금고에 쌓은 부를 구원의 표시라고 믿고 웃음도 유머의 기쁨도 모르고 사는 모진 사람 스크루지였다. 스크루지는 과거, 현재, 미래를 보며 자신의 자유의지가 결국 자신을 얽어매는 쇠사슬이 되었음을 알고 후회한다. 상업행위에 대한 윤리적 성스러움의 후광을 비춰줌으로 이제 경제는 사회적 윤리의 제약으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최종심급(final judgment)이 되었다. 그러나 개신교에 의해 촉발된 경제적인 개인주의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중세 가톨릭 체제의 장점인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봉건적 구체제를 철거시키고 새로운 근대역사를 열었던 반짝반짝 빛나던 청교도들의 사회윤리는 이제 그 힘이 쇠락하여 사회변혁의 동력을 상실하였다. 사회윤리로부터 벗어나 목적도 없이 거대한 관료조직과 기계문명의 도구적 합리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사회를 베버는 움직이면 더욱 조여 오는 쇠우리’(iron cage)로 진단하였고, 디킨스는 금과 은이라는 금속을 사랑한 나머지 그 금고의 쇠사슬에 묶인 모습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베버와 달리 디킨슨은 우리가 그 결과(인류의 비극)를 바꿀 수 있다고 고백한다. 스크루지는 왜 그의 길을 그가 무시한 타자들의 길로 바꾸었는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행복을 그리워하며 무지와 빈곤속에서 그들의 미래는 파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런던 거리 아이들의 비참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파멸로 가는 미래의 아이들의 비참함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Common Wealth)로 바꿀 수 있다. 신이 우리 모두에게 준 덕(Common Welfare)은 재화뿐만 아니라 타자를 향한 자선, 자비, 인내, 관용이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기에 자본주의도 잘 운용되는 것이다. 사회학의 게임이론의 범죄자의 딜레마실험에 의하면 약속(신뢰)을 지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을 담보한다. 그러면 이 사회는 사기꾼과 협잡꾼들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이것은 베버와 디킨스가 경멸하였던 인류역사 어디에서나 있어왔던 천박한 자본주의이다. 그런데 왜 자본주의 사회는 여전히 작동하는가? 그것은 아담 스미스가 제대로 지적했듯이 내가 정직하게 빵을 만들고 적정한 가격에 유통시키면 정육점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감정인 선한 보이지 않는 마음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이가 부유하게 되는 예측 가능한 합리적 자본주의의 이념이다. 경제학자 베블렌은 신사의 평판만을 중시하며 과시적 소비를 즐기는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노동은 형제와 자매들에게 존엄과 존경을 가져다 줄 무언가 아름답고 유용한 선한 일을 하는 기쁨이요 자부심이라고 하였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더욱 값지게 해 줄 노동의 선한 상품들을 거리에서, 가게에서, 은행에서 한 잔의 음료, 옷 한 벌, 그리고 금융상품을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사고 있는 것이다. 스크루지의 마지막 고백을 드리며, “God bless us, ever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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