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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 - 박상증

성서와문화 2018.09.08 13:11 조회 수 : 7

내가 걸어온 길

 

 

박상증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교회사)

I

 

내가 살아온 여정을 두 페이지로 적으라는 부탁을 받고 90년 인생을 되돌아보니 상상 밖으로 할 말이 많은 것 같아서 간단히 몇 가지 추려서 쓰기로 했다. 내 인생을 2단계로 나눴다.

 

I. 대학시절을 거쳐 대학중퇴 유학시대

 

나는 일본에 파송된 선교사의 아들로 1930년 세계경제공황의 도가니 속 빈곤과 차별에 허덕이던 조선인 노동자의 부락에서 태어났다. 5세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 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어린 마음에 전부 지워버렸다 보다. 나 스스로도 놀랍다. 창시개명은 아라이 후미오(新井文夫). 소학교 때 우리 반에서 창시 안 한 아이가 꼭 하나있었다. 유명한 맑스주의 경제학자 백남운의 아들이다. 월북(1947)했고, 생사는 알 수 없다. 일제시대는 고난의 시대였다. 부친의 투옥생활, 모친의 뒷바라지, 모친을 항상 도와야했던 시절, 교단해산, 신학교 폐쇄, 사택에서 쫓겨나 자기 집 없이 서대문 일대를 전전하며 살던 고달팠던 기억, 서대문 경찰서에서 조선인 형사가 가한 모진 고문과 구타로 의미의 훈장이라며 달고 있는 듯 몹시 흉한 상처.

나는 아직 어려서 해방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 남아있는 분노, 여러 가지 많은 마음의 상처, 이런 것들이 청산되지 않았지만 해방이 왔다. 일본이 원자탄 두 번의 폭격으로 붕괴되어가는 과정에 소련은 일본과의 조약을 파기하고 전쟁에 돌입하며 38선 이북을 차지했다. 코민테른의 꿈은 소멸되지 않았다.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입하는 823일 새벽에 나는 평양(平壤)에 있었다. 공립중학교 4학년(당시 졸업반)은 수업을 폐지하고 공장노동이 필수였다. 6개월의 노동은 해방과 더불어 중단됐다. 그 후 여운영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동원됐다가 중단하고 함경도 할머니에게 가기로 했다. 소련군의 폭격으로 마비된 경원선이 복구되기까지 경의선 평원선을 이용해야 했다. 평양근교에서 원산까지는 걸었다. 이것이 한국에 진주하는 소련군의 첫 선물이었다. 두 달 간의 함경도의 맑은 공기와 농부들의 건강식을 즐긴 후 10월말 찬바람 불기 시작할 때 남한으로 도피하는 그 많은 피난민 속에 끼어서 새벽에 한탄강을 건넜다.

기적같이 대학입학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곳은 상아탑의 경험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일본인 교수들이 떠나버린 연구실에는 한국인 교수가 없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대학원 선배들의 지도하에 연구실은 일종의 혁명가들의 아지트가 되어있었다. 계속되는 동맹휴학, 등록 거부, 은근한 공산당 가입권유, 북조선 총선거를 자원하는 지하선거 참여 등등 기억나는 것만 추려도 한참 더 있다. 선배가 권하는 책은 다 읽었다. 그러나 핵심 분자들의 과외는 또 있었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오늘의 운동권의 실태도 그때부터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한국의 좌파는 별로 크게 진화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공부하고 싶었다. 독서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관념론적 저술은 금물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다 그런 것들이었다. 이 질식할 것 같은 폐쇄적인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려움 끝에 미국에 갈 기회를 나를 어려서부터 아껴주시던 송창근 박사님이 마련해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곳은 켄터키 주의 시골 학교였다. 내가 즐겨 부르던 my old kentucky home, 링컨 대통령이 성장한 곳. 그곳에 가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원래는 동부의 장로교 계통의 학교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미국의 전통적 복음주의 신앙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신대륙을 개척해 나가는 청교도의 정신이 막막한 개척지에서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복음주의 신앙이 형성된 것이다. 고독한 개척지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만사에 개입하신다. 죄는 즉각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즉결 처분 받는다. 이런 신념 없이는 광야에서 개척생활이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로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의 국민들, 그리고 그들의 역사에 대해서 한층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가족과 연락이 됐다. 모친과 동생들은 무사하고 부산 보수동 언덕 위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고 있었고, 부친은 인민군에 납치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학 서양사학과에 같이 입학했던 13명의 동료가운데 일부는 월북, 나머지는 전쟁의 희생되고 생존자는 나뿐이었다. 이것이 민족해방을 주장하던 김일성과 공산당이 저지른 비극의 한토막이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하여 나에게 먼지만큼이라도 남아있었던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을 말끔히 청산했다.

 

II. 귀국 후 다시 밖으로 나감

 

십년이 지난 후 학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귀국했다. 성결교 총회장의 아들에게는 그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욱이 납치되신 분, 그리고 순교자로 추앙을 받는 부친의 하시던 일을 불초가 이어가야 한다는 압력이 무언중에 작용했다. 서울신대는 마지못해서인지 시간강사로 나를 채용했다. 강의를 하면서 목사안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신대 1학년에 등록하도록 강요당했다.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자존심도 버려야했다. 결국 원치 않았던 곳은 나를 군사정부의 법령에 따라 파면했다. 병역기피(미필)가 이유였다. 실은 귀국 후에 병적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들여서 미필의 사유를 서류로 증명하고 신체검사도 마치고 병적을 등록 해 놓았으나 학교가 조사를 안 했을 뿐이다. 당시의 한국교회 안에서 극렬하게 논쟁이 일어나고 있던 에큐메니칼과 에반제리칼의 칼싸움이 이런 식으로 희생양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다. 물론 동정하는 분들은 많았다. 하지만 결국 이 사건을 통해서 나는 모든 구속에서부터 해방됐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단적 교파주의의 멍에에서부터 신학적 반계몽주의(obscurantism)의 망령에서부터 해방되며 대탈출을 이룩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NCC에도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다. NCC에서는 주로 청년과 학생을 상대로 일했다. 청년 학생 운동을 통하여 에큐메니칼 정신이 침투되어가는 것을 직접체험 할 수 있었다. 길진경 목사님을 총무로 모시고 행복한 6년을 지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특기할 사실은 5.16군부세력을 향하여 원대 복귀를 주장하며 저항운동을 전개하셨던 교계의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다니면서 민주화운동의 참뜻을 깨닫게 됐다.

WCC(1966-76) 10년의 경험을 두 가지 초점으로 말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초점은, 1968년의 젊은이들의 반란이다.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은 서양의 중산층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구질서는 사라져야한다는 것이고 세계의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질서를 근본부터 바꿔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의 독점을 강제로 박탈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새로운 공동체운동이 또 하나의 현상이었다. 이것이 역사적 전통을 지닌 대안적 공동체다.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났다. 아직 그들이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완성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고 교회로 돌아왔다는 소식도 못 들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역사적으로 가장 활발했던 미국 기독학생연맹 조직을 장악한 진보세력이 그 조직을 해체했다. 죽어야 부활이 있다고 했다. 부활을 기대하며 자살을 한 셈이다. 그것이 1968년의 사건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시의 회장이었던 하버드대 흑인 학생을 찾아가 학교부근의 다방에서 오랜 시간 논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조직은 아직 무덤에 있다. 부활의 신앙은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다. 그 시대의 미국 신학자. 베넷 박사가 한 말이 기억난다. 금요일의 십자가에서 주일아침 부활에 도달하는 지름길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름길을 약속하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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