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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악음악의 탄생 - 김순배

성서와문화 2018.06.04 17:10 조회 수 : 10

기악음악의 탄생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오늘 우리가 즐기는 교향곡, 실내악, 협주곡 등 기악장르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새삼 의문을 가질 이유 없이 익숙한 음악들이지만 그 역사적 기원이 궁금할 때가 있다. 음악사의 출발이 악기가 배제된 아카펠라로 이루어지는 그레고리안 찬트라는 사실은 이미 얘기되었다. 찬트 이전에도 기악음악은 있었지만 단지 노래와 춤을 보조하는 반주 역할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10세기경 폴리포니, 즉 다성음악이 등장한 이후 여러 성부 중 한 파트를 비올(viol,바이올린의 전신)과 같은 악기가 담당하기도 하였다. 교회 밖의 세상인 왕궁이나 귀족들의 공간에서도 악기 소리는 들려왔다. 역시 춤추고 노래할 때 곁들이는 수단이었다. 이와 같은 경우들은 진정한 의미의 독립적 기악음악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성악음악이 대세요 주류였던 중세와 르네상스 초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순수 악기로만 연주하는 형태의 음악이 부상하기 시작한다.

초기 기악음악의 형태는 독자적인 경로로 생겨났다고 보기 힘들다. 르네상스 시대 즉 16세기에 성행했던 성악장르를 그대로 악기로 옮겨온 것이 독립적인 기악음악의 출발점이 된다. 성악작품으로 접하던 형태들을 악기 연주로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중세 이후 작곡가들의 단골 메뉴였던 모테트(motet)를 베낀 것에 리체르카레(ricercare)라는 명칭이 붙었고 프랑스어로 된 노래 샹송(chanson)을 옮겨온 것이 깐조나(canzona)가 된다. 리체르카레의 뜻은 찾다’, ‘탐구하다이다. 리체르카레에 주로 사용된 악기는 오르간이나 르네상스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류트 또는 비올과 같은, 지금의 관점으로는 고악기들이다. 여러 개의 성부가 서로 모방하며 부르던 모테트는 기악으로도 그 형태를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푸가(fuga)라는 서양음악의 대표적 형식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샹송을 베낀 깐조나는 몇 개의 대조되는 파트로 이루어지며 이는 훗날 소나타(sonata)의 원조가 된다. 소나타의 어원은 소노레(sonore) 매체를 통해 소리내다의 뜻인데 이 장르의 근원이 깐조나 즉 샹송 즉 노래라고 볼 때 다소 아이러니컬하긴 하다. 어떤 의미에서 주요 기악장르의 원조는 튼실하게 그 기반을 다져 온 성악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악곡을 베낀 것 이외의 주요 기악 장르는 춤곡이다. 오랜 옛날부터 악기는 춤 반주에 당연히 쓰였다. 춤곡은 전통적으로 느리고-빠른 두개가 짝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PavanneGalliard가 대표적 예이다. 그런데 춤을 보조하던 역할에서 반주부가 독립해 하나의 작품으로 연주되는 일이 흔해졌다. 분위기가 다른 몇 개의 춤들이 모여서 모음곡(suite)을 이루는 경우도 많아진다. 기악 영역에서 춤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크다. 기악음악은 성악작품과의 뗄 수 없는 연관성과 더불어 춤의 DNA를 그 본질 중 하나로 가진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춤곡에는 몇 가지 속성이 있다. 우선 개별 춤곡에는 반드시 그것이 유래한 나라가 있다. 예컨대 바흐의 작품으로도 자주 접하게 되는 춤모음곡의 알라망드(Allemande)는 독일 기원이고 쿠랑트(Courante)는 프랑스, 사라반드(Sarabande)는 스페인, 이런 식이다. 춤에는 고유의 국적 뿐 아니라 변하지 않는 박자프레임이 있다. 왈츠는 항상 4분의 3박자이고 타란텔라는 항상 8분의 6박자이다. 춤곡을 접할 때 국적과 박자 시스템을 염두에 둔다면 감상에 한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악음악의 또 다른 형태는 즉흥에 의한 것이다. 이는 구교인 가톨릭에서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워진 루터교의 예배의식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배 시작하기 전 오르가니스트는 단순한 찬송가 선율을 바탕으로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는 즉흥연주를 펼친다. 이것이 토카타(Toccata), 프렐류드(Prelude), 환타지아(Fantasia) 등의 이름이 붙은 건반음악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기록된 악보 없이 즉석에서 내용을 만들어내는 즉흥연주의 역사는 거의 음악의 출발과 함께한다고 볼 수 있지만 16세기 즈음부터 발전하는 의도적 즉석연주의 기법은 차후에도 기악음악의 빼놓을 수 없는 특성으로 자리 잡는다. 즉흥연주에서 주어진 기본 선율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변주 기법도 기악음악 특유의 테크닉이다.

독립적 기악음악은 르네상스 후반에 태어나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다채롭게 발전한다. 본격 기악음악의 등장은 18세기 고전시대를 통과하며 가장 정제된 형태인 소나타, 심포니, 실내악 등의 장르로 뚜렷이 자리매김하며 서양음악을 풍요롭게 만든다. 인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성악음악에 밀려 부수적, 2차적 매체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악기 음악은 그만의 고유한 특성과 매력으로 성악이 흉내 낼 수 없는 폭넓고 다양한 음향과 테크닉의 세계를 개발하여 오늘도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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