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외로운 그 나그네는 어디를 향해 갔을까?

-도예가 이종수 선생 10주기에 부치는 헌사-

 

김용수 (조각가)

 

토기는 신석기 문명의 척도와 같다. 신석기 토기 제작은 오늘의 첨단 기술과 비유될 수 있을 만큼, 인류사에 처음 등장하는 혁명적인 산물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제주도 고산리에서 8천 년 전 토기가 발견되었고,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고조선 강역 발해연안 요하문명-흥륭와 유적에서 BC 6000년 전 밑이 평평한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됨으로써, 기존의 서방 유입설은 빛을 잃었다. 말하자면 한반도-만주-시베리아-북유럽으로 연결되는 빗살무늬 토기벨트의 시원이 동이족東夷族임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세계 유산이 될법한 V자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중부에서 출현하여 북 유럽까지 퍼져나갔다. 이처럼 우리 유전자에는 시원의 빛이 새겨있다. 보석은 깊이 묻힐수록 빛은 더 찬란하듯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창조적 유산들은 언제 빛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까마득한 세상 무엇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영감의 집적을 이루고, 맑은 영혼 투명한 마음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나는 도예가 이종수 님의 못생긴 도자기를 보면서 그 해득에 참 어려움이 많았다. 웬만한 작가는 1~2년 공부를 하면 전모를 파악할 수 있으나, 선생을 젊을 때 찾아 뵌 이후 이제야 그 면모를 알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이 형식과 내용에서 세련된 진보를 거듭하거니와, 언뜻 보면 이종수 선생의 그릇은 영 딴판- 퇴영退影과 같다. 선생은 정말 세련된 그릇을 빚는 능력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초기 몇 작품을 보면 그 답을 금방 알 수 있다. 둔중하면서도 세련된 멋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왜 갈수록 세련미를 멀리하고 점점 못난 그릇을 빚었을까? “고향 흙으로 그릇을 빚다가, 흙이 된 사람.” 이것이 막역지우 최종태가 내린, 선생에 대한 최종 평이다. 간결하나 한없는 여운과 진한 메시지가 겹쳐서 온다. 어쩌면 선생은 본래부터 흙을 품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태초의 흙, 시원의 그 자리는 이종수 선생 작품 전반에 걸쳐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공예운동의 선구자이자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는 인생 말년 병상에서 쓴 글 가운데, 한국 도자에 대하여 무유호추의 미(無有好醜之美)”란 찬사를 보냈다. ‘미추를 떠난 아름다움또는 미추를 넘어선 아름다움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깨어나 선생의 작품을 만난다면 어떤 감흥이 일어날까? 하고 상상을 한다. 자료를 검토하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겉 터진 도자기는 한국 도자 사()에서 이종수 선생이 처음 시도한 기념비적인 수작인데, 고향 대전 천변에 오름 새 가마를 지은 후 중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헌데 이미 1962년 대학 3학년 때 부터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대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 끈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대전 시립미술관 시민강좌에서 4지선다형으로 이종수 선생 토기 작품 1점과 고대 토기 3점을 영상으로 비추고, 선생 작품을 고르도록 했는데, 40여 명 중 서너 분이 손을 들었다. 대부분 선생의 작품과 고대 토기의 느낌을 분별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선생이 어디를 좌표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선 도자기가 끝이 아니라 빗살무늬를 빚던 시원의 원초 성, 미추가 버무려져 나뉘기 전 사람들이 빚어내던 깨끗한 마음-야나기가 말한 미추가 없는 아름다운세계로 여행하는 가없는 노정이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제야 왜 선생이 말년에 이르러 쓸쓸한 도자기 한 점 굽고 싶다!” 하셨는지 확연해지는 것이었다.

이종수 선생의 작품은 그냥 스쳐보면 도자기가 아니다. 일반적인 쓰임새도 없어 보이고, 요즘 추구하는 세련미는 더더욱 멀다. 그러나 여기에 선생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에 관한 반전의 격이 있다. ‘이란 작가 정신이 대상에 투영되어 그 사물에서 배어나오는 에너지 총합이다. 우리가 품격이란 말을 쓸 때의 격이다. 이 격은 속된 세련미와 다르다. 선생의 작품에는 비움의 미랄까, ‘허수의 아름다움같은 격조의 무엇이 있는 것이다. 특히 선생의 겉 터진 항아리는 공예와 순수미술의 이분법을 파괴하고 있다. 쓰임을 넘어 미에 대한 근본을 되묻게 하고, 인생여정을 반추케 하는 정신의 그릇으로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다. 장자의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 같은 파격을 지니고 무한한 상상력을 발동하게 한다. 마치 초가의 갈라진 흙벽 같고, 등터진 어머니 손 같고, 가뭄에 타는 논바닥 같고, 겉 터진 메주 같고...... 한국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눈물겨운 그릇이면서, 그 끝은 시원을 향해 내달리는 그릇인 것이다.

선생의 그릇은 장인의 손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듬고 현대조형이 추구하는 세계관을 도자기에 끊임없이 실험하는 투철한 작가적 소양을 견지한 작품이다. 문양만 해도 전통 것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의 드로잉을 도자기에 새기거나 그리고 있다. 조각가의 부조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형태에 있어서도 형식에 구애됨이 없다. 물동이를 인 여인, 아기 업은 소녀, , 얼굴... 등등 이웃 같은 소재를 이웃처럼 표현하며 겨레의 정서와 정취를 살리면서도, 현대 조형미를 갖춘 그릇으로 승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선생의 그릇에는 누천년 도자 내력과 겨레역사가 켜켜이 쌓여, 눈 맑은 사람을 기다린다. 이러한 철학을 갖추기까지 결을 같이한 지우(志友)들이 선생 곁을 지켰다. 담박한 시어로 겨레의 심성을 구현하는 박용래 시인, 장강 같은 사설조로 민족혼을 풀어내는 시인이자 불교철학자 박희선, 한국 정서를 보편적 미학으로 끌어 올린 조각가 최종태다. 이들은 대전을 터전으로 제1과제는 일본에 빛바랜 겨레 혼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절은 아득하고, 서양 물결 또한 높고 거셌다.

이러한 이중의 산고를 겪으며 자기 길을 택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신화였다. 신화를 일부러 엮는 것이 아니라 혼탁한 시대, 남들이 피하는 고생길을 신화처럼 걸었다. 박용래는 평생 고무신을 신고 반잔의 술에, 눈물 반을 채워 마시면서도 투명하게 살았고. 박희선은 일제군사법정 12년 형 옥살이에-위정자가 내리는 차관 벼슬을 내치고, 비새는 초막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최종태는 작품 외 일은 결벽증처럼 멀리했고, 이종수 선생은 45세에 이화여대 교수직을 버리고 스스로를 유폐하는 토굴 같은 작업실을 지었다. 8월이 오면 늘, 선생의 마지막 가마가 있는 금산(錦山)의 하늘을 본다. , 도선(陶仙)처럼 -바람같이 이승을 다녀간 사람! 지금쯤 도솔천에 닿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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