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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라사랑(10)

평화 사상가 안중근, 홀로 일본제국과 전쟁을 수행하다

 

 

박종현 (한국교회사학연구원 교회사)

 

 

1905년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에 의하여 조선이 보호국이라는 미명 하에 강제 병합의 길에 들어선 지 4년인 1909년 후 간도 깊은 곳 하얼빈 역에서 아시아를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 조선의 황해도 출신 독립군인 32세의 청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총격으로 사살하였다. 안중근의 사건은 사건부터 재판까지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그는 옥중에서 두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하나는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와 자신의 이토 저격의 이유를 밝히고 아시아의 평화를 조망한 동양 평화론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동양 평화론은 그의 급작스런 처형으로 완성되지 못하였다. 원래 하얼빈은 러시아 관할이었으나 러일전쟁에 패배한 러시아는 안중근의 재판 관할권을 포기하고 일제의 관할인 뤼순으로 이감하여 재판을 진행하였다. 일제는 국제적 관심사가 된 안중근을 첫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후 사형을 집행하였고, 그의 시신도 은폐하여 한중 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그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1879716일 황해도 해주부에서 부친 안태훈과 모친 조 마리아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안중근의 가계는 고려 명신 안유의 후손으로 조부 안인수는 진해 현감을 지냈고 오래된 가풍을 유지하는 유복한 가정이었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조부로부터 무예를 전수받아 무인 귀족의 기질을 키우며 자랐고 청년기에는 이러한 무인의 기풍이 넘쳐나는 청년이었다. 그는 부친으로부터는 문인의 강인한 정신세계와 천주교 신앙을 물려받았다. 16세에 혼인하여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그가 혼인하던 해인 1894년 동학군이 봉기하자 수 명의 토벌군을 조직하여 2만여 명의 동학군 기지를 습격하여 소기의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동학에 대한 안중근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조선의 전통 엘리트의 입장에서 사유하고 행동하였다는 것을 말해 주는 중요한 단서로 알려져 있다.

17세에 천주교인으로 입교하여 도마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1905년 일본의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상실해 가는 것을 본 그는 중국의 상하이와 산둥 지역을 순회하며 일본의 조선 침략의 부당성을 알리며 다녔다. 그 여행이 끝나고 귀국하여 진남포에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여 구국 인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다시 집을 나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중국 훈춘 지역과 연해주 지역을 배경으로 대일 항쟁을 벌였다. 이 의병활동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그는 포로가 된 일본군들을 만국공법에 근거하여 무장 상태로 풀어주는 등 소신과 원칙의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09년 을사년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근역에 방문한다는 계획을 알게 된 그는 군사적으로 공격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10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역의 삼엄한 경계를 넘어서 역으로 진입하였다. 오전 7시에 역에 도착한 안중근은 9시까지 이토의 도착을 기다리다가 930분경에 러시아 군 의장대 뒤에서 이토에게 다가가 브라우닝 권총을 세 발을 저격하여 이토를 격살하였다. 그는 이토를 사살하며 코레아 후라’(대한 만세)를 세 번 외쳤다.

안중근은 1030일에 러시아령 하얼빈에서 일본령 뤼순으로 이감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11월부터 안중근의 재판이 시작되었고 일제는 이 무렵부터 안중근 재판을 가속하여 사형을 하도록 결정하였다. 210일 경에 1심이 구형되어 안중근 사형, 우덕순, 조도형, 유동하가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자신이 저술하는 자서전 안응칠 역사동양 평화론의 집필을 끝내게 하여 달라고 요청하여 이를 일본 재판부가 수용하기로 하였으나 이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315안응칠 역사를 탈고하고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던 안중근은 책의 서문을 탈고하던 무렵인 1910326일 일제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그의 모친 조마리아가 만들어 보내 온 수의를 입고 있었으리라.

안중근이 저술하다 미완의 저술이 된 동양 평화론은 러시아를 필두로 하는 서구 세력의 동양 침략에 맞서서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경제 문화적 그리고 군사적 동맹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내용은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이 뤼순에서 평화회의체를 구축하고 3국의 연합은행과 공동화폐를 발행할 것과 3군의 공동 안보를 위한 군대를 조직하고 3개 언어를 서로 가르칠 것을 제안하였다. 3국은 경제 교류를 확대하고 3국의 황제가 교황을 방문하여 신용을 얻고 대관을 하여 정치 동맹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황청 방문 등은 천주교인으로서의 한계가 드러나지만 그의 이러한 구상은 동아시아 국가연합을 처음 제안한 것으로서 현재 유럽연합의 구상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진보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를 처결한 애국의사로서뿐 아니라 더 나아가 조선의 전통 엘리트로서 범아시아 평화체제 구축과 그 사상의 창시자로 더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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