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종교와 문화

유교와 한국문화

 

 

정재식 (보스톤대 석좌교수 사회윤리)

 

유교가 삼국시대에 한국에 처음으로 수입된 이후에 유교는 토착적 무교와 도교와 불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별로 존재가 없었다. 그러다가 고려조에 이르러 국자감과 대학이 설립되자 유교는 점점 세력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승로 (927~989)가 천명한 바와 같이, 유교는 도덕적인 지도력을 강조하고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로 인정되었다.

14세기 말에 조선조가 고려를 대체하고 유교가 새 왕조의 이념적인 바탕이 되자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기초로 정립되었다. 사직과 가족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면서 조상을 숭배하는 가례가 중요시 되었다. 차례와 묘제 같은 제례가 중요시 되고 사회를 지탱하는 제례로 강조 되었다. 불교나 무속도 이러한 가치를 따랐고 유교적 이념은 종교와 사회의 핵심적 가치로 등장하였다. 유교적 가치와 이념은 향약과 계, 학교, 서원, 곽거제도 등에 의해 지탱되고 신장되어 대대로 전승되고 유지되었다. 향약 같은 전통 사회의 조직과 이념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전통 한국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정도전(1342-1398)의 배불 정책과 그 이후의 성리학의 정착으로 조선은 전통 사회에서 유교 사회로 정착되었다. 불교나 도교나 무속도 유교적인 이념과 제도를 수용하고 옹호해야만 생존 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유교는 전통 사회의 실제적인 중핵을 이루고 있었다.

18세기 이후에 서학이 조선에 나타나면서 서학은 조상 숭배와 가족적인 가치와 주자 가례와 같은 유교적인 정통적 가치와 제도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조선 사회에 발붙일 수 없었다.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 제도도 소위 유가적 자본주의와 가족적 재벌의 형태를 수용해야만 인정되었다. 이것은 정치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에서도 소위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와의 타협은 불가피했다. 북한의 김씨 왕조의 존속과 지금의 재벌의 가족 승계구조는 유교적인 문화의 잔재가 얼마나 깊게 남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이 서구사회와 만나면서, 소위 문명개화 되면서 일어난 현상은 세계관과 가치관의 갈등이다. 현대 한국문화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과 갈등을 뜻한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소위 ‘me too’ 현상은 신구 가치와 인간관의 충돌을 말한다. 본래 남녀유별을 뜻했던 인간관은 남존여비사상을 뜻하게 되고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인간차별의 병폐를 낳았다.

유교와 공자가 죽어야 한국사회는 바뀌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유교의 혁신이 없이는 한국문화와 사회의 변혁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한편 유교와 공자가 죽으면 한국사회는 존속할 수 있을까? 현재의 저출산 풍조가가 계속된다면, 그리고 유교적인 신념 체계와 가치관이 다 무너진다면 한국사회는 자멸하고 만다. 현대사회와 문화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고, 그 밑바닥에는 유교의 위기가 있다. 유교의 미래는 한국문화와 그 사회의 미래를 말한다. 유교는 한국문화와 사회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문제는 유교가 자체를 개혁할 수 있는 동력과 논리를 스스로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유교는 문화(, 정치, 경제, 사회, 과학 기술 등)에 종속한 것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