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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문화

한국 문화에서 불교의 의미와 위치: 시간의 확장, 정신의 심화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적 정신문화의 근간

 

신라의 문장가이자 정치가인 최치원(857~?)은 화랑 난랑을 추모하는 비문에서 당시 신라의 오랜 가르침에 대해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이 가르침의 근본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는데, 그 내용은 세 가지 가르침(三敎, 유불도)을 포함(包含)하면서 뭇 생명(群生)을 접화(接化)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에서 효도하고 집밖에 나아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魯司寇]의 핵심이요,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며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周柱史]의 근본이요, 모든 악행을 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석가[竺乾太子]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이 글의 핵심을 다시 풀면 이렇다: 신라의 문헌인 선사(仙史)에 따르면, 유교, 불교, 도가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라에는 이미 풍류라는 깊은 가르침이 있었고, 이 가르침으로 뭇 생명을 만나 교화해 왔다. 유불도를 화학적으로 녹여낼 수 있는 깊은 정신세계가 진작부터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 현묘한 가르침, 정신적 역량으로 유교를 수용해 효와 충을 실천했고, 도가를 수용해 언어를 넘어서는 자연의 세계를 추구했으며, 불교를 수용해 선행을 실천하는 근간으로 삼아왔다. , 유불도라는 일종의 외래적 가르침을 수용해 녹여내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럴 수 있는 현묘한 가르침과 능력이 신라인에게 이미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치원의 이러한 이해는 오늘의 상황에도 적절히 적용된다. 다양성을 통합할 수 있는 역량 및 정신이 조선 후기 및 근대에 들어서는 서학 및 그리스도교, 나아가 서양 문명을 수용하는 근간으로 작용했다. 조선 후기에 집중 등장한 이른바 민족종교(동학/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대종교 등)도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신라 때 유불선을 포함하던 바로 그 정신 역량(풍류)의 종교적 구체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오랜 정신 역량이 다양한 종교, 깊은 가르침을 소화하고 한국적으로 변용시키면서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문화적 구도를 염두에 두고서, 그 안에서 불교의 의미와 위치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사상의 확장, 정신의 심화

 

한국에서 불교는 고구려 때 먼저 수용되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소수림왕 때(372), 백제는 침류왕 때(384) 때 소개되었다. 신라의 불교는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좀 더 나중에 수용되었다. 삼국 시대 초기의 불교가 어떤 형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치원의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때 불교의 특징은 악을 끊고 선을 행하는 윤리적 가르침으로 이해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순한 이론이나 윤리적 지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들어온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단순히 개인 윤리의 영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듯이, 삼국 시대의 불교도 새로운 사상과 문화의 총체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정신사에서 중요한 것은 불교로 인해 한국인이 육체적 죽음 너머의 세계를 진지하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교는 오늘의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도 공감할만한 종교적 삶의 정수를 오랜 세월에 걸쳐 제시해 주기도 했다. 불교를 빼고서 한국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불교를 빼고서 한국의 철학과 사상을 설명할 수도 없다. 신라 시대의 원효와 의상, 고려 시대의 의천과 지눌, 조선 시대의 서산과 사명, 근세의 만해를 비롯한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의 절반 이상이 불교 승려들 아니던가.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불교가 한국인의 사상적 깊이를 형성하는 데 끼친 영향이 막대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아가 한국 문화재의 절반 가까이가 불교문화재라는 사실(국보의 52%, 보물의 65%, 서적 및 명승의 67%)도 이러한 불교적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불교를 제외하고서 한국의 문화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시간의 확대, 내세관의 강화

 

종교적 차원에서 좀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한국인의 내세관이다. 한국인에게는 내세관이 전반적으로 희박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은 한국인의 현실 지향성 내지 현세 중심성을 잘 나타내 준다. 이러한 한국인이 시간의 차원을 과거와 미래로 길게 연장시켜 사고할 수 있게 된 것은 다분히 불교의 영향이다. 세상만사를 상호 관계적으로 파악하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업론(業論) 등은 세상을 인과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했고, 현재의 원인으로서의 과거, 현세의 결과로서의 내세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졌다. 인연(因緣), 전생(前生), 내세(來世) 등의 언어가 한국인에게 익숙해졌고, 천당과 지옥 등도 일상 언어가 되다시피 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언어처럼 통용되는 천당과 지옥도 본래 불교 용어였다.

가령 천당’(天堂)은 원효(617-686)정토’(淨土)를 가리키는 대중 용어로 사용한 이래 한국인의 내세로 자리 잡아 왔고,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줄임말인 지옥역시 육도(六道)의 맨 끝 자락에 위치하는 최하 등급의 세계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이 때 천당과 지옥이라는 불교적 내세는 극단적 이분법에 따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원론적 세계관을 지닌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상호 분리되는 이원론적 상벌의 세계로 대체되면서 수용되었다.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는 물론 초기 한국 천주교도 및 개신교인이 남긴 문헌에 천당지옥이라는 상벌관이 신앙의 정수처럼 각인되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서학 및 천주교가 도입되는 과정에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하게 된 숨은 이유 가운데 하나도 천당 신앙 때문이기도 했다. 사후에 천당에 가리라는 신앙이 죽음도 불사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내세관 자체야 어디에나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리스도교가 자신도 모르게 불교에 연원을 둔 용어를 차용하고 적용하면서, 좀 더 강력한 내세관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등 그리스도교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있는 용어가 실상은 불교 언어이고, 그러한 용어가 실제 신앙생활에도 상당한 의미를 불러일으켜 왔다는 사실은 종교 현상의 복합성을 잘 말해준다. 불교는 한국문화는 물론 그리스도교 신앙 형성의 근간에도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종교적 실재인 것이다. 더욱이 불교적 영성이 세계화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불교를 모르고서 종교의 지형을 그리거나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교의 눈으로 한국의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저 이론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