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종교와 문화

한국 무교(巫敎)의 문화사적 의미

 

 

유동식 (연세대 은퇴교수 문화신학)

 

 

세기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의 문명들을 독립문명(獨立文明)과 위성문명(衛星文明)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독립문명이란 태양과 같은 것이어서 독자적인 저력을 가지고 창조적인 발전을 해가고 있는 문명이다. 따라서 다른 문명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보다는 자기의 문명의 빛으로서 다른 문명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예컨대 과거의 중국문명이나 현대의 서구문명이 그러하다. 과거 중국문명은 동양 천지를 덮었고 오늘의 서구문명은 세계 전역에 파급되어 있다. 이에 반해 위성문명은 자기의 독자성이 거의 없고 창조성이 빈약하기 때문에 항상 열세에 몰려 있다. 따라서 강대한 독립문명에 의존함으로써 자기의 문화를 유지해 간다. 독립문명의 발전된 사상, 종교, 제도, 기술 등을 도입하거나 모방 또는 개조하여 제 것을 만드는 것으로써 자기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다른 문명에 영향을 줄 만치 큰 사상이나 문화를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문명이나 일본문명이 그러하다. 중국문명이 태양이었다면 한국문명은 지구요, 일본문명은 그 지구를 돌고 있는 달이었을 것이다.

한국문명은 역사적으로 중국문명이라는 태양을 도는 지구였다. 중국으로부터 문명의 빛을 받아들여서 한국문화의 지층(地層)을 형성해 왔다. 가장 깊은 암석층을 이루고 있는 것은 천여 년에 걸쳐 받아들인 중국의 문물제도와 불교의 이데올로기다. 그 위의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유교문화의 지각이다. 그리고 19세기 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걸쳐 급속도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지표층이 있다. 기독교를 동반한 서구문명이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의 문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문화의 지층은 최소한 세 겹으로 되어 있는 셈이다.

한국문화의 지핵(地核)은 무교이다. 외래문명을 받아들이기 전 한국에는 억압 없이 무교가 노출되어 있던 때가 있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외래문명들을 받아들이고 문화 지층을 형성하게 했다. 그러나 한편 지각은 차츰 무교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조선 오백년 사이의 유교나 근대화의 물결을 몰고 온 서구문명이 오늘의 지표를 형성하자 무교에 대한 억압은 더욱 심해졌다. 뜨거운 원초기(原初期)의 무교에 접촉했던 불교는 그 열에 적지 않게 용해되어 상당부분이 동질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교는 겹겹이 쌓이는 지각의 봉쇄와 중압에 못 이겨 지하로 물러앉고 한국문화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무교는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민중문화의 저변을 흐르면서 지핵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문화의 심층에서 여전히 그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행동양식을 결정할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적지 않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아직도 곳곳에서 무교의 용암이 활화산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본다. 시시때때로 부락제가 진행되는가 하면 방방곡곡에는 아직도 굿하는 소리가 남아 있다. 무교라는 지핵은 깊숙이 억압되어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무교의 에너지는 여전히 민중 속에, 그리고 한국문화 속에 간직되어 있으면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그 강한 열량 때문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만약 이 지열이 억압되는 대신에 창조적인 열량으로 변화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무교란 이미 사라져 버린 고대종교가 아니요, 미개민족의 단순한 원시종교도 아니다. 이것은 고대종교의 잔류계승(殘溜繼承)된 것이요, 한국의 현대문화 사회 속에서도 민간신앙의 형태로 살아남아 있는 역사적 종교현상이다. 흔히는 단순히 무속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교를 사회적 습속(習俗)으로 다루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에는 종교현상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종교적 독자성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

한국무교는 물론 동북아시아와 내륙 유라시아 일대에 퍼져 있는 원시종교현상인 샤머니즘의 일부라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문화사를 통하여 형성된 한국적 특수성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한국무교란 한국적 샤머니즘에 대한 고유명사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국무교란 단순히 사회적 습속 이상의 종교적 현상임을 나타내는 말인 동시에 한국적 샤머니즘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한국의 무교란 이미 사라져 버린 고대종교가 아니요 미개 민족의 단순한 종시종교도 아니다. 이것은 한 고대종교가 한국의 문화사와 함께 살아 온 것이며, 고등종교를 받아들인 현대 한국의 문화사회 속에서도 민간신앙의 형태로 살아남아 있는 종교현상이다. 따라서 한국무교란 고대 한국인의 신앙과 그 역사적 흐름, 그리고 현재 무속으로 알려져 있는 민간 신앙 현상 전체를 포함한 포괄적 개념이다.

 

* 이 글은 유동식 ,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의 서론 한국무교의 문화사적 의미와 연구 과제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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