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8년 성서와 문화

종교와 문화

한국문화와 한국종교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종교학)

 

문화는 사람의 삶을 총체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마련한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문화라는 개념 안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의 삶이란 없습니다. 당연히 종교도 그러한 의미에서 문화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종교는 문화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든지, 않아야 한다든지, 하는 주장들과 만납니다. 종교를 초월이나 신성(神聖)이나 신비의 범주 안에 두게 되면 그것은 사람의 삶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이해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문화의 맥락에서 살핀다면 바로 그러한 초월적인 현상으로 개념화된 실재조차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표상화 된 것일 수밖에 없어 여전히 종교는 문화현상이라는 주장을 이어갑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리에 서면 종교와 문화와의 관계란 적합성이 없는 서술입니다. 가능하다면 문화 안의 종교를 주제화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삶은 국지성(局地性)을 갖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서술을 위한 분화는 불가피합니다. 한국문화나 그 안에 있는 한국의 종교는 그래서 일컬어집니다. 한국인들의 삶의 총체적 표상 안에서 종교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자리 잡아 그 전체 삶과 유기적으로 일정한 관계를 지으며 기능하고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관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유념할 사항이 있습니다. 문화의 국지성을 획하는 경계는 고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우선 주목해야 할 일입니다. 문화는 살아있는현상이어서 늘 꿈틀거립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옮겨 다니면서 다른 문화와 만나 자신의 변모를 짓기도 합니다. 경계는 늘 흔들립니다. 흔히 우월한 문화나 열등한 문화로 문화를 나누기도 하고,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문화나 주변에 처해있는 문화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범주의 설정은 준거의 선택에 따라 가변적이어서 이를 기준으로 한 문화담론은 언제나 그 주장의 보편성을 두고 논쟁을 일으키곤 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만남은 상호간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문화담론의 장에서는 순수란 없습니다. 그것은 이념일 뿐입니다. 단일성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뒤섞인 다양한 현상들이 융합된 현실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어서 문화담론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입니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시간은 흐르지만 삶은 쌓인다는 사실입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축적됩니다. 기억과 망각의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지만 기억의 전승이 현실로 경험되고, 축적된 시간의 단층을 우리가 탐색한다는 일이 사실인 한, 시간 따라 삶도 흘러 사라진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해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는 축적된 기억의 단층들로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문화는 시간과의 관계에서 중첩구조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진전은 재연이나 회복과 같은 어휘로 서술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도 순수처럼 이념일 뿐입니다.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승되는 기존의 현상에 새것을 첨가하면서 일어나는 변화가 역사의 진전을 이룹니다. 물론 그 새것이나 변화나 진전이 가치판단적인 준거에 의해 필연적으로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유념해 보면 한국문화와 한국종교라는 주제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한국의 종교문화를 다음과 같이 개관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는 불교도 유교도 도교도 그리스도교도 모두 누리는 문화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종교는 이른바 외래종교들입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그 이전의 우리 종교, 그러니까 본래적인 우리 종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저는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살펴준 논의들을 바탕으로 그 종교, 물음에 대한 해답의 상징체계의 가장 오랜 경험의 표상은 하늘-경험-경험이라고 묘사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그리고 일상을 넘어서는 힘의 실재에 기대어삶의 궁경을 헤쳐 나가지 않았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그 경험이 훨씬 더 세련된 신비스러운 후광을 지니게 되었고, 이에 더해 유교의 지배적인 힘의 확장과 더불어 합리적인 사변으로 그러한 경험들을 재구축했고, 나아가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 구체화되지 않았던 신이 인격적인 존재로 현현된 경험을 누리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기층문화에 불교적인 특성이 겹쳐지고, 그 위에 다시 유교적인 단층이 포개지면서 다시 그리스도교가 그 위에 중첩된 그러한 현상이 한국의 종교문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는 이를 다시 기층문화를 지형(地形)으로 묘사하면서 이에 포개지며 쌓아져 이제도 살아있는 모든 종교의 현존을 기상(氣象)으로 기술해보기도 합니다. 상대적인 서술이지만 지형은 별로 변하지 않는데 기상은 늘 변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종교의 문화사는 바로 지형도와 기상도의 기술을 정교하게 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를 지닌 문화권 안에서의 개개 종교인의 자기 종교에의 자의식이 그 종교가 주장하는 정통을 그대로 지닐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고, 이러한 문화권 안의 시민들의 종교이해가 잘 다듬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시간대(同時間帶) 안의 다시간층(多時間層)의 경험이 빚는 혼란, 그리고 제각기 다른 종교언어의 혼재가 낳는 사유의 엉킴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조는 언제나 혼란을 그 소지(素地)로 삼습니다. 절대라든지 불변이라든지 유일한 진리라든지 하는 고정적인 비문화적의식에서 조금만 열릴 수 있다면 우리의 종교문화는 가히 창조적인 긍정적 차원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일해 있다고 감히 발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