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김효숙 작
예수님의 못박힌 손발과 머리의 상흔을 모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만이 아닌 부활의 상징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전체적으로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르는 느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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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가한 날의 사색 - 최종태

조회 수 3715 추천 수 0 2016.05.20 20:14:57

어느 한가한 날의 사색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조각가)

 

무슨 무슨 전문가는 많은데 그것을 종합하는 사람이 없다. 종합하고 판단하는 지혜를 어디에서 찾는가. 철학이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도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 철학과가 있고 종교학과가 있지만 거기에서는 철학이라는 것과 종교라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곳이지 철학자 또는 종교인이 되는 것하고는 성질이 다른 것 같다. 학문도 예술도 자꾸만 세분화되어 분화되는 사실만 있고 근본을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요즘 나오는 그림들을 보자. 모두가 각각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백이면 백이 다 다른 그림을 만들고 있는데,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정당하다 할 것이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들을 모두 자연스럽게 바라보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만도 수십만 명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세계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화가는 많지만 누가 예술가인지 찾기란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참 그림 찾는 별도의 그룹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화가는 많지만 예술가가 보기 어렵고, 종교인이 많지만 참 도인(道人) 보기 어렵고, 철학자가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질 않는 것이다.

꽃이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가 하고 한 잎 한 잎 따서 분석을 해보니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란 것이 분명히 있는 것인데,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냥 보면 있는데 분석해서 찾으려 하면 없는 것이다. 어떤 이가 피카소한테 그림 설명을 해 달라 부탁을 했는데 피카소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새 소리를 들으면서 즐거워한다. 그런데 그 새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서 좋아하느냐그랬다. 자꾸만 분석해 들어가면 최고의 진리가 나올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분석하면 세포가 되고 유전자가 되고 할 텐데 그걸 어찌 사람이라 할 것인가.

아름다움이란 요것이다 하고 찾아서 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근본이니 본질이니 하고 말로는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게 찾아서 내놓을 수가 없다. 좋은 사람이다 하면 됐지 이러이러하다고 분석했을 때 과연 다 설명이 되겠는가. 예수님을 분석한대서 다 이해될 일일까. 얘기가 비약하는 것 같지만 삼위일체 얘기를 분석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 분석하는 일 말고 그 반대지향을 무어라할까. 그런 쪽에로의 길이 차단된 분화지향만의 길이 바람직한 일인가. 이해 가능한 세계에만 집착하는 것, 지금 이해가 안 된다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나는 이해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가. 아니다. 나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는 한 찰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란 것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세계이다. 그림은 지금을 그리는 것이고 지나간 일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평범이란 말이 새롭게 들린다. 보통이란 말이 새롭게 들린다. 내 고향 시인이 연전에 그냥이란 시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보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나오는 것이었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자네 요즘 어떻게 지내나. 뭐 그냥 저냥 지낸다고 그런다. 그런 거지 이렇게 저렇게 하며 지낸다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냥이란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가 들어있는 것이고 안부를 묻는 사람도 그만하면 다 알아듣고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창밖에 나무가 어제 오늘이 무엇이 다른가. 그 속을 분석해 보면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 있겠지만 내 눈에는 어제의 나무와 오늘의 나무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이 보인다. , 저 나무가 하루 새 이렇게 달라졌나 하고 감격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천지는 항상 변하고 있지만 천지는 무궁한 세월을 항상 어제와 같이 오늘도 그런대로 있다. 야단스러울 게 하나도 없다. 평범함 속에 의미가 다 있는 것 같다. 오늘 무슨 희한한 감격적인 발견이 있겠는가. 해가 뜨면 아침이고 해가지면 저녁이고 뒤꼍에 심은 구절초가 잘 있나 하고 하루에도 몇 차례 들여다보지만 그들은 그냥 있을 뿐 마음을 내지 않는다. 때가 돼야 꽃이 핀다.

몇 해 전의 일이었다. 길상사에 관음상이 잘 있나 싶어 보러 갔었다. 보살상 앞에 서 있는데 어떤 젊은이가 인사를 하면서 형이 신부이고 누나가 수녀이고 하는데 다 내가 알고 있는 분들이었다. 자기는 비교종교학과 학생이라 하였다. 최근 삼년간 삼백권의 책을 읽었다하였다. 그러니까 읽을 만한 책은 거의 다 읽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인즉 책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겠다고 했다. 옳은 말 좋은 말이 책에 다 있는데 그것 가지고 갈증이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참 맞는 말이다 싶었다. 사람을 만나야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 세상에 사람은 많은데 그런 사람은 만나기가 어렵다. 보고서 단번에 아 선생님! 하고 다 내려놓고 엎디어 절하고 싶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그 젊은이의 마음씨가 참 아름답다 싶었다. 서울바닥에 이런 젊은이도 있었던가. 관음상은 노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소리 없는 웅변을 하고 있었다. 말로 다 안 되는 한없는 이야기를 말없음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침묵이야말로 웅변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을 보고 싶다.

선비들을 존중하고 지식인들을 높이 대접하는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많이 배운 사람들이 돈 앞에 무력하고 권력 앞으로 줄 서는 것을 보면서 신망이 없어졌다. 식민지 시대를 살고, 동족전쟁을 겪고, 419라는 희대의 학생혁명을 겪은 나라인데 그것을 예술로서 승화시키지를 못하였다. 문학도 음악도 미술도 모두가 그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옛날부터 예도(禮道)라 했는데 예만 있고 도는 빠진 것 같다. ()마저 빠지면 기()만 남는다. 거기에다 여러 종교가 혼재하다보니 가치에 혼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삶에서 중심잡기가 어려운 것이다. 절대적 가치가 하나만 있어야지 어떻게 여럿일 수가 있을까. 성인들은 너와 나의 하나 됨을 말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둘이고 우리들의 인생은 둘 속에서 그 갈등을 극복할 수가 없다.

있는 것과 없는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한없는 분별심으로 평화가 깨지고 있다. 아무리 파고 또 파 봐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 그런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남긴 말씀 목이 마르다그것은 무슨 갈증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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