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김효숙 작
예수님의 못박힌 손발과 머리의 상흔을 모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만이 아닌 부활의 상징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전체적으로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르는 느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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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거울을 닦고 참회록을 쓰자 - 고진하

조회 수 3707 추천 수 0 2016.05.20 20:06:18

나의 거울을 닦고 참회록을 쓰자

 

고진하 (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한국의 어떤 시인이 유럽에서 열린 시낭송회에 참석하였는데, 그의 시낭송을 듣고 난 한 독자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시인이 대답했다. “저는 신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시인이 이런 대답을 하게 된 것은, 문득 한국의 밤하늘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떠 있는 십자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고.

밤의 도시 전체를 공동묘지처럼 보이게 만드는 붉은 네온십자가! 어떤 이는 십자가가 많은 것이 무슨 문제냐, 그만큼 예수의 정신이 생생히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그런 낭비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살려내고 있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십자가가 무엇이던가. 흉악한 죄인을 매달아 죽이던 형틀이 아니던가! 유대 땅을 식민지로 삼은 로마제국이 자신들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들을 죽이던 처형도구. 예수 역시 로마 세력과 거기에 빌붙는 유대 기득권자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져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과연 오늘날 예수의 숭고한 정신을 받든다는 교회는 십자가의 참뜻을 헤아리고 있을까. 가난한 자, 고통 받는 자 편에 서야 할 교회가 소수의 가진 자들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은지.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그 시절에도 십자가를 매단 첨탑이 높았던 모양이다. 첨탑 밑에서 서성거리는 시인은 한껏 고개를 쳐들고 묻는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높은 곳에 계신 당신. 번쩍거리는 후광을 두룬 금관의 예수’. , 당신께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금관의 예수>를 쓴 김지하 시인은 저 무거운 금관을 벗겨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높은 첨탑 밑에서 발만 동동 구른다. 한 시인은 우리를 구원하실 그분, 그분은 어디에 계실까고 소리치지만, 또 한 시인은 헐벗은 마음속에 괴로웠던 사나이의 영상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영상을 자기 속에 내면화한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점점 더 흑암이 깊어만 가는 시대. 검은 잉크를 찍어 그가 종이에 쓴 글자들이 꽃처럼 피어나는 피로 바뀌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가 쓴 시는 곧 피로 쓴 시!’(니체) 모름지기 이런 표현은 윤동주 같은 시인에게나 어울리는 것.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는 예수의 영상을 내면화한 시인에게, 십자가는 허락되고 만다. 자기보다 앞서 가신 스승의 가르침, 곧 한 알의 씨앗의 죽음 없이 새 생명을 싹 틔울 수는 없다는 걸 시인은 또렷이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십자가라는 말에 너무 쉽게 따라붙는 자기 비움, 희생, 사랑, 화해 같은 말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를 깨뜨리지 않으면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알껍질이 깨어지지 않으면 생명의 탄생이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윤동주는 끝내 자기를 깨뜨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이 되었다. 스물아홉이라는 꽃 같은 나이에 이국 땅 차디찬 감옥에서 겨레의 독립을 꿈꾸던 비상의 날개가 꺾이고 말았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부분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윤동주의 고백은 시를 쓰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등불을 밝혀 어둠을 모두내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내몰고라고 말한다. 그는 저 광포한 세계의 힘에 비하면 자신의 힘이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연약하지만 밝아올 희망의 아침을 기다리며 조금이나마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려고 애쓸 뿐. 그의 시가 지금도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독립투사였기 때문이 아니다. 한없이 여리고 연약한 청년이 끝끝내 지켜내려고 애쓴 뜨거운 자존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빌었던 맑고 순수한 시심(詩心),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는 다짐에서 드러나는 뜨거운 생명애. 윤동주의 시는 오늘의 우리 삶을 비춰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이다. 윤동주가 구리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한 줄의 참회록을 쓴 것처럼 오늘 우리도 나의 거울을 닦고 참회록을 써야겠다.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사람의 소중한 자존감마저 팽개치고 살아가는 우리의 왜소하고 나약해진 품성에 대해. 십자가로 표상되는 예수의 사랑과 자유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천민자본의 악령에 혼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우리의 천박한 모습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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