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김효숙 작
예수님의 못박힌 손발과 머리의 상흔을 모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만이 아닌 부활의 상징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전체적으로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르는 느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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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과 선(善)의 대결과 대화 (3) - 장기홍

조회 수 1590 추천 수 0 2017.09.21 08:07:24

()과 선()의 대결과 대화

장기홍 (경북대 명예교수, 지질학)

 

6. 오이디푸스신화(神話).

구약 창세기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인류는 본래 살인자였다고 했다. 고대(古代)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도 아들이 부지불식간에 부왕(父王)을 살해하고 왕비인 어미를 아내로 맞는다는 요지의 뿌리 깊은 불륜의 죄악에 대해 증언한다. 왕자가 아비의 왕위를 뺏고 어미와 재산과 영토를 아비로부터 빼앗아 차지한다는 불륜의 악을 잘 지적했다. 이 신화는 인류역사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현실을 말해준다. 가장 좋은 예는 한일관계(韓日關係)이다.

일본민족에 대한 유전적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유전요소 중 일본원주민의 것은 근소하고 대부분이 대륙 쪽, 특히 한반도에서 갔음이 판명되었다. 삼한(三韓)-삼국(三國)시대와 이후에 일본열도로 이주한 한반도 사람들이 대체로 일본인들의 조상이다. 그런데 서둘러 일본이 독립정신을 마련한 후에는 돌이켜 한반도를 향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근래에는 국권침탈을 했다. 왕자 오이디푸스가 저도 몰래 선왕을 살해하고 그의 아내 곧 어미(왕위, 영토 기타)를 아내로 맞아들임이다.

7. 선악은 상생(相生)한다.

선악은 서로 상대적이어서 서로 원인이 되며 서로 생산한다. 노자는 유무(有無)가 상생(相生)한다고 했거니와, 선악도 그러하다. 만일 악()이 없다면 선()도 없을 것이다. ()만 있다면 그것은 천사(天使)의 세계이지 현실은 아니다.

오늘날 무차별 희생자들을 내고 있는 자폭 테러나 총기난사, 북핵과 북의 감옥정치, 마약 등 갖가지 악은 온 세상에 그득하다. 바야흐로 선()이 필요하고 아쉽고 요망되는 때를 맞았다. 악이 창궐(猖獗)할수록 선은 세계의 필연(必然)이 되며 인간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

진선미(眞善美) 가운에 특히 선()은 사람이 전인적(全人的)으로 지향하는 것이므로 플라톤은 선()을 최고의 이상(理想, 이데아)’이라 했다. 진선미 가운데 선이 으뜸이라는 뜻이니 사도 바울이 그 중에 으뜸은 사랑이라말했던 것과 같다. ()은 가까이 있으니 사랑이나 자비가 곧 그것이다.

8. ‘니코마코스 윤리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강의 초고(草稿)를 그의 아들이 정리해 만든 책이라 한다. 이 책은 역사상 최초의 윤리학 입문서이므로 윤리학에 뜻을 두면 맨 처음 대하는 필독서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은 사랑과 자비를 권고하는 내용은 없고, 이기주의적 선()과 행복을 가르침이 아니냐 하는 비평을 받는다(나이절 워버턴 저, 최희봉 옮김, 스무권의 철학, ‘와 사랑간행, 296 pp).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사람마다 행복(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을 추구한다는 전제 아래 그 행복이 곧 선()이라고 했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우리가 잘 살아보세할 때의 그 잘 사는 것에 해당하며 번창(繁昌번영(繁榮)하는 삶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적(觀照的)인 행복이 가장 고등한 행복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는 행복을 위해서는 외적(外的)인 선() 곧 재물, 친구, 미모, 권력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제자로서 알렉산더 대왕이 배출되었음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적극적인 선()의 예는 악()한 약탈을 당해 구원이 필요한 사람을 구출할 사랑과 자비(慈悲)이다(누가복음 10장 참조).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귀족이나 선택된 시민의 자기개발의 윤리학일 뿐 자선(慈善)이 필요한 사람들을 안중(眼中)에 둔 보편적 윤리학은 아니라 생각된다. 미국 토인(土人)이나 흑인노예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었다면 감동은커녕 분노마저 느꼈을 것이다.

9. 소크라테스와 예수.

()을 함양함이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요 자기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다(村井實무라이 미노루 지음, 1977, 소크라테스(上下) , 171 pp, 講談社). 그는 탁월해야 덕()이 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 생각을 계승했다. 그 도덕은 도시국가의 시민의 도덕이어서 자연히 탁월함이 전제(前提)였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덕이 첫째였다. 전쟁에 지면 남자는 학살되고 여자는 노예가 되던 고대에 있어서, 실로 으뜸가는 덕은 전쟁에 승리를 가져올 무장(武將)의 무덕(武德)이었다. 스파르타와 오래 싸우는 동안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위해 여러 번 참전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궤변과 진리 허무주의를 반대하고[김형석, 2011, 서양철학사, 261 pp, 가람기획] 이성(理性)에 대한 신뢰 곧 주지주의(主知主義)를 앞세워 서양윤리학의 비조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탁월성은 앎에 있다고 강조하여 지적(知的) 도덕을 권장했다. () 혹은 도덕은 선()과 일치할 뿐 아니라 행복과도 일치해야 그것이 이성적(理性的)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러자면 행복은 이기적 감성적 행복이 아니라 이성적 보편적 행복일 수밖에 없다. 오래 계속된 스파르타와의 전쟁기간에 소크라테스는 도덕의 타락을 막기 위해 지성(知性)을 역설했으나 법관들은 그가 민주주의 정치를 악평했다고 문제 삼고 그에게 아테네의 전통적 종교를 무시하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고 기소하여 사형이 집행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주의는 궁극적으로 소크라테스에게서 연유했으나 소크라테스의 쾌락주의(快樂主義)를 초월한 행복의 사상을 제대로 계승하지는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현세적 쾌락의 행복을 따르는 수준이었더라면 제자들이 감옥에서 도피하자고 권유했을 때 따랐을 것이다. 그가 짐짓 독배를 마시기를 택했음은 그의 행복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주의가 이기주의가 아니냐 하는 비판을 받는 일이 있음은 그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저술을 하여 많은 오류가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학문분야의 틀을 마련한 역사적 공로가 있다.

도마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너 자신을 알라고 가르쳤다. 이 말은 아테네의 델피신전(神殿)에 나붙은 신탁으로, 소크라테스의 좌우명이다. 예수는 소크라테스보다 후세에 살았으므로 자연히 그의 사상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는 소크라테스의 차원을 능가하는 고난과 고뇌의 행복을 말하면서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쳤다(산상수훈). 유대민족이 로마의 압정 아래에서 모두가 가난한 형편 중에 만일 누군가가 부자로 산다면 그는 정복자에게 아부하여 동족의 것을 뜯어서 부자가 되었기 쉽다. 그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선이요 복이었던 것이다.

10. 사랑과 자비.

철학이 선을 논할 때 종교는 핵심을 찔러 사랑과 자비를 가르친다. 마하트마 간디는 ahimsa(不殺生)를 주장했다. 사랑 자비 불살생의 선()이 가장 핵심적인 선()임은 물론이다. 예수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이른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쳤다. 예수의 원수사랑은 그 실천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결국 인류는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이다.

만일 예수를 따라 당시(AD 70) 유대인들이 로마 압정에 인고(忍苦)하고 훗날의 인도의 간디처럼 무저항으로 대했더라면 예수 사후(死後) 유대인들이 로마군에 멸망되어 디아스포라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빈자리를 아랍인들이 메워 팔레스타인 문제라는 비극이 잉태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AD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후 유대인들은 마사다 요새에서 769명이 자결하고, 생존자들은 국토를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흔히 지나친 이상(理想)으로 여기고 비현실적이라 생각하나 그 사랑의 이상은 인류를 위한 영원한 표준이다. 그 등불이 없었더라면 세계는 등대 없는 항해처럼 되었겠지만 우리는 영원한 교훈, 틀림없는 등불을 가지게 되었다.

윤리학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행복을 최고선으로 여기고 있다. 칸트는 최고의 덕()과 최고의 행복이 일치하는 경지를 최고선이라 했다. 지당한 이론이지만 예수의 원수사랑이야말로 가장 알아듣기 쉬운 최고선이 아닐까?

조물주는 그의 생명사업을 위해 천적(天敵)으로서의 악의 마련이 불가피했다. 우리는 그이를 위해 선을 마련함으로써 그에게 효도를 다할 수 있다. 우리는 악을 치료할 고뇌를 안고 태어났다.

11. 무보수의 선행(善行).

칸트는 영혼의 존재를 가정하고 사후의 보상이 선인(善人)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런 보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 악이 창궐하여 선악(善惡)의 균형이 깨어지면 세계는 파멸에 이를 터이므로 자연히 모성애와 같은 선이 준비되어 있음도 사실이다. 한편, 도덕적 감수성이 탁월한 사람은 선을 위한 의무감과 사명감을 자각한다. 그들은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선을 지향한다. 그러한 깨달음이 곧 보상이다. 사람들이 이기적 동기에서 열심히 살다보면 결과에 있어 이웃을 위함이 되도록 그러한 자연(自然)이 마련되어 있음도 사실이다.

나의 친구 한 사람은 오래 전 박사공부를 위해 미국에 갈 때 고아 한 사람을 에스코트한 일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지체부자유아()였으므로 내 친구는 공항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양부모가 혹시 아이 받기를 거절할까 염려했다고 술회(述懷)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양부모는 아이를 받아 안고 이 아이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올려 공항의 관중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듣는 우리도 눈물을 흘렸다.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사명과 인류애가 아니면 누가 하필 그런 어려운 부담을 안게 되는 입양을 자청할 것인가?

12. 새 시대의 사랑.

어느 날 공자는 간밤에 외양간에 불이 났다고 듣고 사람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는 공자의 인간존중(‘휴머니즘’)이라 하여 일컬어 왔으나, 요즘 와서 보면 그는 마소의 안부는 묻지 않았으니 중생애(衆生愛)는 박약했음이다. 그가 만일 소나 말이 화재(火災)를 면했느냐?”라고도 물었더라면 현대인은 그를 보편(普遍)윤리의 선구자로 일컫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조류(鳥類)전염병 에이·아이가 유행하여 큰 재난이 되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가금(家禽)류를 무자비하게도 좁은 공간에 가두어 기르는 통에 면역의 힘이 줄어버린 탓 같다. 자연 상태에서 자라던 닭을 가두어 너무나 이익을 많이 노리는 것이 윤리에 어긋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의 범위를 중생애(衆生愛)로까지 넓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생태계의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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