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김효숙 작
예수님의 못박힌 손발과 머리의 상흔을 모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만이 아닌 부활의 상징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전체적으로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르는 느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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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 루터의 종교개혁과 성서번역의 문화적 공헌

 

박일영 (루터대 총장, 조직신학)

 

에른스트 트뢸치(1865-1923)는 기독교의 대 사회적·문화적 관련성을 기준으로 기독교의 형태를 교회형(church type), 소종파형(sect type), 그리고 신비주의형(mysticism)으로 구분하였다. 교회형은 사회와 문화 내에서의 현실적인 삶을 적극 수용하고, 세상 속에서 갖는 선교적 사명과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형태를 말한다. 소종파형은 세상의 제도와 문화와 거리를 두고 종말론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형을 가리킨다. 신비주의형은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혹은 교조적인 신앙 형태를 거부하고 개인적 내면적 차원의 신앙을 강조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교회형은 사회 안에서의 기독교인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사회적 권력과 제도, 혹은 죄의 현실과 쉽게 타협할 수 있는 약점이 있고, 소종파형은 완전주의적 도덕을 지향한다는 강점이 있지만, 세상과의 단절을 요구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신비주의형은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지만, 탈역사적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을 갖는다.

 

로마 가톨릭이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 대표적인 교회형이다. 로마 가톨릭은 성()과 속()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속에 대한 성의 우위성을 강조하며, 세상 권력 위에 군림하였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트뢸치의 유형론에 따르면 여전히 교회형이다. 그러나 루터의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이해는 로마 가톨릭의 이해와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성과 속의 분리, 성직 계급과 평신도의 분리, 수도원적 영성과 일상적 삶의 분리를 거부하는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은 새로운 차원에서 기독교의 사회와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였고, 이로써 근세로 넘어가는 역사적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다.

 

대 사회적·문화적 관련성에 있어서 적극적 참여와 책임을 강조한 면에서 교회형을 유지한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에는 그러나 소종파적, 혹은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신자 개개인 신앙의 내면적 가치와 신자들의 실존적, 체험적 신앙을 강조함으로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제도적, 성직 계급주의적, 성례전적 영성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루터는 종교개혁 당시 열광주의, 신령주의 등으로 불린 소종파적인 개혁운동과는 확연히 거리를 두었다. 급진적이고 종말론적인 공동체를 추구한 소종파적 개혁운동은 한때 폭력적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사회와의 단절 혹은 사회에서의 도피를 택하였기 때문이다.

 

이 경계선 상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의 특성과 방향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원리였다. 루터는 오직 성경만의 권위로 교황의 권위, 즉 제도적이고 인위적인 권위와 대적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문자로 된 성경의 권위를 근거로 소종파적 신앙 유형에 대적하였다. 신령주의자들은 문자적 성경 그 자체는 무의미하고, 내면적 영적 체험이 진정한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이때의 문제점은 일상성의 가치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루터는 문자를 무시한 영의 일방적 강조도 결국 가톨릭의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루터에게서 성경은 지금도 우리의 문화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오시는 성육신의 수단이었다. 예수님이 육을 입고 이 땅 역사 한복판에 오셔서 현실과 일상 속에서 우리를 만나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의 문자를 통해 일상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지금도 성육하고 계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당시 인쇄술이 발명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었다. 루터의 성경 번역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오직 성경의 원리에 근거한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의 자국어 번역을 통해 일종의 문화혁명을 이루었고, 종교개혁은 운동은 사회와 문화 속에서 구체화되고 지속될 수 있었다. 루터는 1522년 바르트부르크(Wartburg)에 피신해 있는 동안 11주 만에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9월에 출간되어서 “9월 성경이라고 불린 이 번역본은 처음 3,000부를 인쇄하였지만 그해 말 곧 2판을 찍어야 했다. 신구약 완성본은 일차로 1534년에 완성되었는데, 루터는 그 이후에도 수정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번역과 출판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동력과 그 이후 영향력의 중심이 되었다.

 

성경의 자국어 번역이 갖는 첫 번째 의미는 루터가 당시 로마 가톨릭의 정경(正經)인 라틴어 성경(Vulgata)을 넘어서, 성경 원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서 직접 성경을 번역하였다는 데 있다. 이것은 원천으로”(ad fontes)라는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의 새로운 시대 정신과 연관성이 있다. 당시 스콜라주의에 식상한 지식인들은 고대 문명이 낳은 찬란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관심은 자연 고대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물은 원천에 가까울수록 맑다라는 원칙에 근거하여, 고대 언어와 문화로의 회복을 그 시대의 부패 개혁을 위한 방향으로 삼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 원어에 대한 관심도 교회 개혁의 과제와 연관이 되었다. 당시 인문주의의 왕자로 불린 에라스무스는 1516년 희랍어 성경을 출간하였다. 예를 들면 그 과정에서 에라스무스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마 4:17절 말씀을 고해(성사)하라....”라고 번역한 라틴어 성경을 비판하고, 그 말씀을 회개하라라는 말로 이해하였다. 원어에 대한 관심은 곧 교황권에 대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오직 성경의 결정적 의미와 영향력은 성경을 원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였다는 데 있다. 당시 교회와 학계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다. 라틴어 성경(불가타, Vulgata)에서 자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엄하게 금지되었었다. 성경 해석권도 교황만이 독점하였다. 성경을 읽지도 해석하지도 말라는 이야기는 교회에 전적으로 의존하라는 요구였고, 교황권의 배타적인 지배권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성인들은 라틴어라는 장벽 안에서 일반인들과 분리하며 그들의 우월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루터의 성경번역은 이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평신도에게로 넘겼고, 이러한 일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지성과 문화의 영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성경에 대한 자유로운 자기 주장과 토론의 장이 평신도들에게도 열린 것이다. 교회 개혁의 관점에서 시작된 이 영적 민주화추진은 사회적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고, 성경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지적 민주화운동은 평등사상과 더불어 공공 교육, 보편 교육의 기초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은 신분 계급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정보의 공유와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 표준 독일어 형성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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